페북에서 모셔온 글. 러시아에는 인종적 편견이 별로 없다 박 병 환 전 주러시아 공사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절 모스크바 시내를 다니다 보면 현지인들이 내게 길을 물어오곤 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러시아인,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 시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러시아인들은 칭기즈칸 시대 이래 오래 전부터 아시아계 민족들과 더불어 살아 왔다. 러시아는 공식 통계에 따르면 140여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세계에서 민족 구성이 가장 다양한 나라이다. 러시아에 거주하거나 왕래하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느낀 적이 있었던 불쾌감을 러시아에서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언젠가 모스크바 경찰청 외사국장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현지에 체류하고 있는 아시아계 외국인들은 대부분이 중국인, 베트남인 또는 한국인인데, 한국인들은 대체로 소득 및 교육수준이 높아 문제가 거의 없고 중국인과 베트남인의 경우는 소상인들이 많아서 관찰 대상이라고 하였다. 다만 피부색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 눈치였다. 물론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인종적 편견을 노골적으로 거칠게 나타내는 일은 별로 없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러시아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백인이 주류인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있는지 여러 기준에서 평가할 수 있겠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결혼이라고 본다. 특히 백인 여성이 아시아계 남성과 결혼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냐가 중요하고 결정적이다. 우리나라나 서구에서도 여성의 경우는 상향혼(上向婚), 즉 자기 집단보다 사회적 위치가 높은 집단과의 통혼은 흔해도 그 반대의 경우는 훨씬 적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결혼은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의 일이 되면 180도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족 간 통혼은 더욱 그러하다. 상대방 민족을 동등하게 보고 편견이 없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1970년에 나온 유명한 미국 영화 <러브 스토리>의 예를 들어 보자. 피상적으로만 보면 단순히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애절하게 이어가는 한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미국 동부지역 앵글로색슨계 부유한 가문과 가난한 이탈리아계 집안이라는 구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같은 백인 사이에도 어느 민족 출신이냐가 문제가 될 수 있는 현실이다. 하물며 아시아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은 어떻겠는가? 미국 백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한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여주는 절제된 태도를 갖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고 그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는 100년도 넘고 현재 200만 이상의 우리 동포가 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여성이 백인 남성과 결혼한 경우는 적지 않으나 한국 남성이 백인 여성과 결혼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현재 이렇다 할 통계는 없지만 후자는 매우 드물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지 예로부터 한민족은 혈통을 중시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반면에 러시아 CIS지역의 경우들 보면 이민 역사가 150여년 되었으나 러시아 및 구소련에서 독립한 공화국들 모두 합쳐서 고려인의 수는 50여 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려인의 경우 다른 민족, 특히 러시아계와의 통혼이 적지 않다. 고려인 여성이 러시아계 남성과 결혼한 경우는 물론 고려인 남성이 러시아계 여성에 장가든 경우도 적지 않다. 러시아인들이 고려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러시아 고려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바실리 조(Василий Цо)의 부인도 러시아계이다. 고려인들은 재미 동포들에 비해 현지화 정도에 있어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 교포들의 미국 주류 사회로의 진입이 아직 미약한 수준인데 반해, 이미 1990년 이전 소련 시절에 고려인들 가운데 공산당 간부로 출세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2000년대에는 러시아 연방 하원 의원이 2명이나 나왔다. 고려인 여가수 아니타 최(Анита Цой)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인데 러시아에서 여전히 톱가수의 대열에 올라있고 그녀의 남편은 모스크바 시정부 공보관을 지냈다. 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인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도 고려인인데 그의 어머니는 러시아계이다. 한편 90년대 이래 러시아에 유학하고 현지 정착한 한국인들 가운데 현지인과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오순도순 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년 여름 블라디보스톡에 갔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동포 청년이 한국인을 사칭하고 슬라브계 러시아 여성과 교제하여 결혼하였는데 나중에 사기 친 것이 들통 나서 이혼 당했다고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보여 주는 웃지 못할 이야기이다. 모스크바 근무 시절 필자의 러시아어 선생은 국립 푸쉬킨 대학교 여교수이었는데 하루는 러시아인들의 인종적 민족적 편견이 매우 낮은 것이 다소 의외라고 하였더니 그녀는 소련 때는 유치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모든 민족은 평등하다고 가르쳤고 그 결과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인종 또는 다른 민족 출신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결혼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답하였다. 소련 당국은 러시아 민족주의를 억눌렀고 오히려 소수민족들의 문화적 전통 계승을 장려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 지역 출신들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대도시로 많이 이주해 온 뒤로 슬라브계 러시아인들과 충돌이 가끔 발생하는 등 민족주의 경향이 생긴 것도 사실이나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온 민족 간 인종 간 관계가 원만한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필자가 모스크바에서 살던 아파트에서도 몽골계 남성과 러시아계 여성이 단란한 가정을 꾸린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끝으로 한국에서는 러시아 여행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내용의 글을 가끔 접하고, 우리 여행객이 사고를 당하면 언론은 인종주의자들 내지는 스킨헤드들의 소행이라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나라든지 우범지대나 불량배들이 있는 법이다. 대부분 러시아 현지 경험도 없이 서방 언론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본다. 미국의 대도시 그 중에서도 뉴욕과 워싱턴의 경우 밤에는 젊은 여성들이 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데 대해서는 왜 말들이 없을까? 반면에 모스크바는 젊은 여성들이 밤에도 자유롭게 다녀도 문제 없을 정도로 치안이 좋다. 이는 필자 뿐만의 관찰이 아니라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킨헤드는 70년대 경제 침체기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 그리고 미국에서도 생겨 났다. 발생 빈도나 행동의 정도 측면에서 보면 서구의 경우가 더 심각하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침략에 맞서 가장 처절하게 싸운 러시아에 히틀러를 숭배하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이해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에서 스킨헤드의 비행은 극소수 철없는 젊은이들의 일탈 행동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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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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